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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과 마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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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경환
농민신문 시론| 2013년 5월 22일 
최 경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마중물’이란 펌프로 지하에 고여 있는 물을 퍼 올리기 위해 먼저 한바가지 붓는 물을 말한다. 펌프는 요즈음 농촌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기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식수 및 생활용수의 주공급원이었다. 무더운 여름철 펌프 물로 목물을 하면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시원했다.

 

 펌프를 설치하려면 먼저 부엌 가까운 마당에서 지하수가 풍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선정한다. 물이 솟아나는 지점까지 파 내려가 파이프를 묻고 지상에 펌프 상단부를 조립하면 설치는 끝난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마중물을 먼저 붓고 펌프질을 해야 한다. 마중물이 적으면 물이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적당량의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펌프는 물을 푸고 그대로 두면 남아 있던 물이 지하로 내려간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물을 푸려면 다시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그래서 물을 푸고 나면 항상 물 한바가지는 수돗가에 남겨놓았다. 다음 사람이 물을 풀 때 사용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한 목이 아무리 말라도 마중물을 마셔버리지는 않았다. 목마름을 조금 참고 마중물로 시원한 물을 퍼 올려 주위 사람과 나누어 마셨다.

 

 그동안 농촌에는 다양한 형태의 정부 지원 사업이 시행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마무리된 대다수 사업은 정부지원을 밑천으로 활용해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주민의 소득 및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초의 사업 취지와 달리 정부 지원이 끝나자마자 작동을 멈춘 시설과 조직이 전국 곳곳에 적지 않다고 한다. 정부 지원이 있는 동안은 사업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정부 지원이 그 사업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 것이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겠지만, 그동안 정부의 지원을 ‘마중물’이 아닌 ‘마실 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부 지원을 마중물 삼아 지역경제의 기반 구축과 지역주민의 소득원을 마련하기보다는 몇몇 사람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누어 마셔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펌프를 예로 들면, 펌프가 물을 잘 퍼 올릴 수 있도록 적절한 장소를 선택하고 성능을 보강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펌프 주위의 비가림시설 등 외형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간다면 ‘농업·농촌에 대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든가 ‘자기 돈이면 저렇게 쓸까?’라는 등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농촌지역사회에서는 탈 없이 잘 지내던 주민간 갈등만 심화시킬 것이다. 지금이라도 농촌지역에서 추진되는 이러한 정부 지원 사업들을 서둘러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먼저 현재 작동하지 않는 장치나 시설 및 조직은 어디에 얼마나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지 파악해 활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앞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정부의 지원을 마중물로 삼아 지역주민이 두고두고 마실 물을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주민 모두가 노력해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펌프로 물을 잘 퍼 올리려고 가끔 나사들을 조여 주는 것처럼 사업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 지원이 농촌지역에서 결실을 맺을 때 정부의 농업·농촌에 대한 투자 확대를 계속 요구할 명분이 있으며, 정부도 나름대로 보람을 찾을 것이다. 더 이상 마중물과 마실 물을 혼동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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